화해. 상생 3월말에서 4월초로 넘가가는 주간이다.
이주는 추모주간 이라고 한다.. 4.3사건? 그동안 전혀 모르던 이야기 였다.
일요일 4월3일이 되는날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이제도민인데 당일날은 사람도 많을것같아서, 토요일 배낭배고 빵과물 이랑 버스를탄다.
주소상 제주시 봉개동 시내이지만, 이곳은 중산간인 거친오름 옆에 자리잡고 있다.
개관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중산간이여서 그런지 휑 한느낌이다..
화해 와 상생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화해와 상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담을수있는 그릇모양의 기념관이 좌측으로 보인다.
굉장히 큰큐모로 이루워져있다.
그럼 기념관은 제일끝에 보기로 하고 정문에서 오른쪽으로(5번쪽) 돌아보는것이 좋을것같다.
왠지 이곳에 오기전에 4.3사건에 대해 search 는 했지만,
좌익,우익 아직도 이런 말들이 오가는게 이해가 되지않았다. 뭐..난 그런것과는 머니깐..머리아픈 정치..
돌담을 돌면 허리높이에 글들과 만나게 된다.. 아마도 아이를 위한 자장가인듯 하다.. 자장가를 읽는다.....
동상앞에 다다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동상밑에있는건 눈을 표현한것이고, 동상제목은 바로25세 어머니였다
변병생이면서 토벌작전이 벌어지던 당시 눈이 많이쌓인 1월 중순 피신을위해 가던 두살배기 딸 과 함께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은체 발견되어 두생명을 기리고자 만들어졌다고 한다.
명비? 약 1만5천명..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못낸다고 한다. 현재 제주도인구가 55만을 넘었다고 한다.
1948년 당시의 인구로서는 엄청난 숫자일거라 생각된다. 비석에 이름을 세워 모두 적어두었는데..
사진에서와 같이 제주도의 모든 면단위에서 사상자들이 나온것이다.
나이가 지긋하시던 분은 유심히 자기 고향동네에서 이름을 찾는다.
초등학생일때 아버지를 잃어셧단다. 밭에 가신다고 간후론 돌아오지 않으셧다고....
현재 63주년 50년동안은 아무도 입에 담지 못하엿다고 한다. 60년이 되서야 아버지 이름을 찾았다고 하신다..
봉인관.. 실제로 유골을 발굴해서 이곳에 안치해 놓고 잇다. 들어가볼수 잇으며, 여기서부턴
왠지 숙연해 진다..
위령탑에 들어갈수 있으며, 안에는 위패들이 모셔져 잇다. 어마어마 하게 많은 위패들이 저부채꼴 모양으로
모셔져 있다.
내가 가진 이조그만 눈으로는 이모든 분들을 한눈에 담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다들 깊은 사연에 안자서 멍하니 까마귀 울음과 함께 하시는 분, 묵묵히 서서 지켜보시는분....
이넓은 곳에 그저 까마귀 울음소리만 그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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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1945년 해방이후 미군정 당국의 정책 실패와 사회문제 등으로 민심이 불안한 상황에서 1947년3월1일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죽는 사건이일어났다. 제주도민 민.관 총파업에 대응해 미군정은 경찰과
극우파인 서북청년단을 제주로 파견 으로 레드아일랜드로 분리 시켜 감금과 고문을 한다.
1948년 4월3일 남로당(좌익파)제주도당 무장대는 경찰과 극우파의 탄압, 통일조국을 외치며, 소요사태가 발생.
결국 미군정의 우려되로 5.10선거때 제주도는 투표가 무효처리 되었다.
단독정부 수립후 제주도사태 진압을 위해, 군에의한 진압작전이 펼쳐지고, 계엄령이 선포된다.
제주도 전체에서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집단적으로 죽임을 당햇다.
1949년 끝난듯 보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각지역에 형무소에있던 제주도민이 또다시 희생되었다.
결국 1954년9월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었다. 이로써 7년7개월만에 막을내리게 된다.
그때 불태워진 집들 토벌대와 무장대에 살해된 사람들로 인해 제주에 중산간쪽에는 사라진 마을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현재 도민들이 중산에 살지않고 바다쪽으로 내려와 도시를 이룬것은 이때부터가 아닐까?
또 이때 사건으로 일제치하에서 돌아온 도민들은 육지로 일본으로 다시 떠나 갔다고한다
얼마전에 오사카의제주 라는프로 이쿠노쿠 프로를 보았는데, 시장에선 모두 제주방언을 사용한것을
보고 놀랐었는데, 이때모두 떠나간 선조들에 의해 먼 오사카에 다들 살고있는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현실은 아직도 극우파에 의해 4.3폭도공원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도민들은 자기 아버지 형, 동생, 어머니 식구들을 잃었다.
4.3일이면 10년 전만해도 다들 집에서 눈물흘리며, 각자 집에서 제사를 지냇다고 한다.
외국에선 이런 오랜정부의 오판으로 이뤄진 경우 다시는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더 알리고
교육을 시킨다. tv에선 일본에서 지진으로 힘들텐데 독도 교과서 문제가 흘러나온다..
나역시 교과서엔 이런사건은 들어보지도 알지도 못했다...50년이나 지나서 풀어내기시작한 이야기..
인정 하지 않는것... 그것이 더큰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왠지 5.18 과 닮이있다. 혹시 미리 알고 반성햇다면 일어나지 않을수 있지 않았을까...
가는방법 : 매월 1,3주 월요일은 휴관
시내(동천R) 에서 1번시내버스 조천행 이용
(하루에 몇번 운행이 없기때문에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http://jeju43.jeju.go.kr 또는
1번버스 운행표를 참조해서 가야함) -돌아올때 시간도 꼭..
<by 제주안트레>